Survival in Fantasy
한국의 한 작은 마을에 하와이가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이 닫혀버린 낙원에서 발신된 엽서 하나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겪어본 적 없는 시간과 장소로부터 발송된 그 엽서를 수집하였다.
Survival in Fantasy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 닫혀버린 낙원에서 발신된 엽서 하나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겪어본 적 없는 시간과 장소로부터 발송된 그 엽서를 수집하였다.
Survival in Fantasy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작가노트_Survival in Fantasy
J에게
당신이 쓴 엽서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미국의 한 웹사이트에서요.
걷고 지나다니면서 보는 풍경의 옛 모습을 볼 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적층이 드러나 보이는 듯해서, 저는 한국에서 발행된 오래된 엽서들을 구경하고 때로는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날도 이런저런 엽서들을 구경하다가 'Bugok Hawaii, Korea, 1984'라는 이름의 엽서를 보았어요. 부곡과 하와이라는,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모를 두 지명이 나란히 연결된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연상되지 않았어요. 호기심에 찾아보니 '부곡하와이'라는 테마파크가 있었다구요, 저는 알지 못했어요. 판매자가 올린 당신의 엽서 앞면과 뒷면의 사진은 화질이 너무 나빠서 당신이 엽서를 부친 곳이 'England'라는 점만 확인할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조차 알지 못했던 부곡하와이라는 곳에 가서 영국으로 엽서를 부친 당신이 궁금했어요.
1984년도였다면 바다 건너의 한국, 거기서도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으로 가는 길이 간단하지는 않았을 테죠. 당신은 어떻게 그곳에 있는 테마파크까지 왔던 걸까요? 무엇을 보고 어떤 시간을 가졌나요? 나는 많은 것들을 상상하며 그리스에 있는 어느 판매자로부터 당신의 엽서가 배송되기를 기다렸어요.
우표가 여러 장 붙어서 오기까지 며칠이나 걸렸기 때문에 그동안 저는 부곡하와이라는 곳에 대해 검색해 보았어요. 고향에서 따듯한 온천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한 재일교포가 1979년에 설립한 테마파크,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였고 뜨겁게 호황을 누렸지만 점점 그 인기가 식어가다 2017년에 폐업했다고 하죠. 불과 5년 전 오늘이었다면 저도 가볼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의 엽서를 손에 받아들고 당신이 엽서 뒷면에 작은 글씨로 빽빽이 채워 넣은 글을 읽으면서 저는 마음에 무엇인가가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동안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어느 영국 여성을 제멋대로 상상했던 거죠. 당신은 한국의 한 테마파크의 무대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새로운 일상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어요. 당신의 편지는 주말이면 대단한 인파가 몰려드는 당신의 무대와 숙소 주변의 푸르른 언덕들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었고, 요거트가 너무 먹고 싶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그런 당신의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우체국에 갈 수 있노라고 적힌 대목에서는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그 작은 글자들을 새겨넣었는지 알 것 같았어요.
당신이 묘사한 그때의 그곳을 찾으러 저는 부곡으로 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중에는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1984년도에 외국인 공연자들과 함께 숙소 생활을 했던 공연단장님도 있었어요. 아마 당신과 함께 생활하셨을 테죠. 당신이 춤을 췄던 무대에 조명을 비추고 시설을 만드셨던 분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당신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고 만날 수는 없었지만요. 부곡하와이는 문이 닫힌 채 아직 그대로 남아있어요. 벽을 따라 그곳의 바깥을 더듬어 걸어볼 수는 있었죠.
넘쳐났던 방문객들도, 당신도 모두 떠나갔지만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이들이 있어요. 부지 내부에 있는 식물원의 열대 식물들을 옮기지 못했다고 하거든요. 하와이스러운 초록을 위해 이곳저곳에서 옮겨져서 영문도 모른 채 붙어 앉게 된 그들은 아직 저 벽 너머에 뿌리내리고 서로 얽혀가며 살아내고 있어요. 이제 하와이를 느껴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들은 매일의 생존이라는 공연을 이어가고 있지요.
불 꺼진 온실에 노을빛이 내려앉는 시간을 떠올려보고 있어요. 이국적인 모양새의 이파리와 가지를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인기척이 사라진 지 오래된 그곳에 따듯한 석양이 비치는 모습을요. 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형상들과 고군분투를요. 엉킨 줄기들 사이로 언뜻 지나가는 누군가의 춤을 상상해요. 저는 본 적 없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 붓자국들을 겹치며 쌓고 있어요.
당신은 당신의 춤을, 공연을 본 적이 있나요? 무대 위의 당신을, 춤추고 있던 당신은 보지 못했겠지요. 마치 우리가 영원히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듯이 말이에요. 저는 당신을 통해서 삶이라는, 되감기나 반복 재생이 불가능한 공연을 생각해요. 각자의 무대 위에서 하루하루의 일상이라는 춤을 추고 있지만, 이 춤이 어떤 공연으로 완성될지는 무대를 내려온 뒤에야 추억할 수 있겠죠.
2022년 3월에, 최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