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의 산, 채석장, Венчац
2019년 10월, 중국의 레지던시에 입주하여 작업하면서 만난 작가들 중에 세르비아 출신의 M이 있었다.
M을 통해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르비아라는 나라의 이곳 저곳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경험해 보지 않은 곳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들로 나에게 ‘어떤 세르비아’가 생겨났다.
이것을 그린 다음 언젠가 세르비아에 직접 가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M에게 ‘세르비아의 멋진 자연풍경을 찍은 사진’을 요청하였고, 그렇게 한국으로 날아온 jpg파일들 중에서 어느 산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산에서 거닐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상상하고, 그 산의 실제 경험자인 M과 대화하며 작업했다.
그렇게 산을 그려가던 와중에 사진 속 풍경이 채석장이었다는 것을 M이 그 곳을 지칭한 단어로부터 알게 되었다.
내가 상상한, 마치 산수화 같은 풍경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바위가 깎이고 잘려나가 사진 속 모습과 달라져가고 있을 현재 모습이 궁금했다.
그곳의 지명 ’Венчац’를 검색해서 비교적 최근의 사진들과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럴수록 나의 그림은 실제와 멀어져 갔다.
결국 나의 그림은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사생(寫生, 실물이나 경치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이 되었다.
‘실재하는 장소의 사진을 보고 어디에도 없는 곳을 그렸다’는 점과 ‘어디에도 없는 곳을 상상하며 언젠가 직접 경험해보기를 꿈꾸었다’는 점에서 발생한 경험, 인식, 이상 그리고 평면과 회화에 대한 생각들이 작업을 이끌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시각적 체험에 개입하는 선입견과 상상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경험하게 했다. 붓이 스치며 만들어져 가는 그곳의 풍경은 실제로는 지금 깎여나가 없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보이는 이미지가 만들어낸 그림 속 공간은 세르비아에 가더라도 볼 수 없을 것이다.
2020년
5월에, 최가영